익산 금마면 동고도리의 오랜 샘물 ‘한샴(寒泉)’을 위하여 2024년 6월 17일 등록
2024년 6월 17일 익산 금마면 동고도리의 오랜 샘물 ‘한샴(寒泉)’을 위하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조원교(趙源喬)
높고 낮은 산 밑에는 물이 솟는 곳이 대부분 있다. 땅을 파지 않았는 데도 물이 지표로 솟아 넘친다(용출湧出 한다).. 따라서 두레박이 필요 없는 곳인데 이곳을 흔히 샘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는 집안의 부엌에서도 용출하는 경우도 있다. 엽동 마을에도 그런 댁이 있었다.
*땅을 파서 두레박을 이용하는 우물도 샘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금마 지역에서는 우물을 '샴'으로도 부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넘어 오고 가던 구명산 밑에도 아주 오래된 샘이 있다. 이 샘은『금마지金馬志(1755년)』와『익산군지(1959년)』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나온다. 이 샘을 우리들은 ‘찬샴물’이라고 불렀는 데 표준어로 옮기면 ‘찬샘물’이다.
*엽동 인근에도 지표로 용출하는 수량이 많은(풍부한) 샴들이 있었다. 마을에서 식수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샴이다. 춘포 담월 마을, 춘포 신동 마을, 춘포 노적 마을, 팔봉(현재는 덕기동) 불식이(佛石里) 마을 등이다. 부러운 마을들 이제는 모두 전설이 되었다.
*나의 외가 마을 금마면 기양리 삼바지 마을(나의 외가는 본래 기양리 426번지였다.)은 우물을 파면 안되다는 전설이 있었다. 어머니(1926-2020년)께서 이르시기를 '마을이 풍수지리상 형국(形局)이 ‘배선船국局’이라서 우물을 파게 되면 배가 난파당한다고 생각하여 마을 사람들은 부호일지라도 우물을 마을 안에 파지 않았다. 대신 마을 밑 쪽에 공동 우물을 용수로 사용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까지도 새마을 운동할 때까지도 그랬다. 삼바지 마을의 공동 우물(기양리 528-2, 529-7 ?)에서 나의 외할아버지(1901-1960년)의 동생(張吉善; 1907-1915년 4월 7일)께서 불행을 겪어 외증조모님(1880-1935년)께서는 눈물로 사셨다고 하셨다.
어릴 때 금마장에 가 장터 옆 금마 동고도리 747번지에 있는 ‘한샴’이라 부르는 우물을 자주 보았고 자라서도 여러 번 보았다. 동고도리의 한정리 (寒井里) 안 유명한 우물이다. 금마의 이 ’한샴‘은 한자로 옮길 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천(寒泉) 다른 하나는 한정(寒井)이다. 이 한샴이 있는 관계로 일대 거리는 ’한샴거리‘로, 마을은 한정리(寒井里)로 불렀다.
*금마장은 이웃 금산장(錦山場)과 맞선다. 어머니께서는 이 날을 기억하시며 나를 위하여 금산까지 인삼을 사러 가끔 가셨다.
*한샴이라는 말은 한자 찰寒과 샴이 결합된 것이다. 찬샴에서 앞 글자만 한자로 바꾼 것이다.
*참고로 금마 지방에서는 찬 곳을 ‘한데;라고 하였다. 예: 한데 잠(추운데서 잔 잠)
*한정리의 이웃 옥동(玉洞)은 나의 할머니께서 1905년 태어나신 마을, 1986년 돌아가신 마을이므로 나에게도 사실 매우 각별한 고향이다. 할머니께서 타신 꽃 가마도 1986년 음력 9월 11일 이 우물 곁을 지나갔다.
이 우물은 금마산(해발 115.6m, 최고봉과 한샘과는 약 600m 거리) 일대에서 스며든 지하 용출수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금마 사람들이 아주 요긴하게 사용한 금마에서 가장 큰 이 우물에 대한 기록이 『금마지金馬志(1755년)』와 『익산군지(1959년)』에도 실려 있다.
오늘날은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이들도 없고 특히 각 가정에서 수도나 지하수를 쉽게 얻을 수 있기에 그 유명한 금마 ‘한샴’도 외면당하니 점자 초라한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유서깊은 마한 백제의 고도 금마의 생명수였다. 맑고 깨끗하게 삶을 이어 나가게 해주신 크고 높은 은덕 은혜 베풀어 주신 고마운 한샴의 용왕신께서도 실로 크게 서운해 하셨을 것이 틀림없다. 이에 그 역사 몇 조각 만이라도 지도 및 사진과 함께 올려 받치는 바입니다. 더하여 한샴이 보다 더욱 소중하게 정결하게 유지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한정(寒井) 고을 관아의 동쪽 백 보 거리에 있는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
에는 시원하여 풍토병을 치료할 수 있다.> 『금마지金馬志(1755년)』「천정(泉井)」 한정(寒井)<在 郡衙東偏百步 冬溫夏冷 加療水土疾>
*동일한 내용이 『익산군지(1959년)』에도 있다.
『금마지金馬志(1755년)』「 천정(泉井)」 한정(寒井)<在 郡衙東偏百步 冬溫夏冷 加療水土疾>
전북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747번지 한샴 2018년 12월 11일 조원교 촬영
<정결하게 유지하는 정성을 담은 글씨를 새긴 돌은 금마의 이웃 고을 여산(礪山)의 천호산(天壺山) 기슭에서 채석한 이른바 여산돌 여산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돌 중에 하나이며 백색 대리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돌 중에 하나이자 백색 대리석에 속하는 ‘여산돌’에 새긴 ‘飮者壽延年음자수연년’의 뜻은 ‘마시는 분은 수명이 해마다 늘어날 것이다’ 이다.
'한샴'이 '寒井한정'으로 표기된 조선시대 익산군 지도, 1872년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이 지도는 왕궁리유적전시관, 왕궁리유적의 어제와 오늘, 2008년, 11면. 이 한정은 한샴 이름이 아닌 금마 안 마을 이름이다.
'한샴'이 '寒井한정'으로 표기된 조선시대 익산군 지도, 1872년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이 한정은 한샴 이름이 아닌 금마 안 마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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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샴'이 '寒井한정'으로 표기된 조선시대 익산군 지도, 1872년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한샴'이 ‘寒泉한천’ 으로 표기된 조선시대 익산군 지도, 호남읍지 내 익산군읍지 수록 1899년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이 지도는 왕궁리유적전시관, 왕궁리유적의 어제와 오늘, 2008년, 12면
'한샴'이 ‘寒泉한천’ 으로 표기된 조선시대 익산군 지도, 호남읍지 내 익산군읍지 수록 1899년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이 지도는 왕궁리유적전시관, 왕궁리유적의 어제와 오늘, 2008년, 12면. 이 한천은 마을 이름이 아닌 샘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