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로 저명한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은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발해 역사를 담은 발해고(渤海考)와 한양(서울)의 풍속을 담은 경도잡지(京都雜誌)를 지었다(엮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대(고조선부터 고려)의 국도(國都, 서울, 수도首都)를 답사하며 시를 짓고 해설을 곁들인 이십일도회고시를 지었다(엮었다..
필자는 이십일도회고시란 책을 약관 무렵부터 알고 있었다. 망국의 한을 품고 금마로 이사 오신 필자의 조부께서 남긴 책들 속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까지 필자는 이 책에 더 깊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이 책을 열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책에서 익산 금마를 국도로 소개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필자의 예감은 적중하였다. 이 책은 익산 금마를 우리나라 역대 나라 중 고조선에 이어 두 번째 나라인 마한의 국도로 소개하였다. 또 그 뒤 예(濊) 나라와 맥(貊) 나라 고구려 (나라) 다음으로 고구려 유민의 나라인 보덕국(報德國) 국도로도 소개한 것이다.
*필자의 조부(1896-1964년)께서 금마의 중요함을 깊이 인식하였음은 판본이 다른 이 책을 두 권 간직한 데서도 알 수 있다.
*필자의 조부께서 보관하셨던 책 가운데 전라도 역사와 충효열 사적 등을 정리한 3건 15책 즉 호남절의록 5책, 호남삼강록 3책 호남읍지 7책을 필자의 어머니께서 2002년 5월 30일 국립전주박물관에 기증하였다.아래는 당시 국립전주박물관의 기증 담당인 학예연구사 김재홍씨(뒷날 국립중앙박물관장 역임)에게 필자가 보낸 편지이다.
(2002년) 5월 31일
김재홍 선생님전
공사 다망한데 (기증 업무를 더하게 하여) 번거롭게 하여 미안합니다. 그 책들(호남절의록 5책, 호남삼강록 3책 호남읍지 7책)은 우리 집안이 1926년경 익산에 내려오셨을 때를 전후하여 보관한 것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충효에 대하여는 남들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보며 그 책들도 그 관점에서 보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내가 적은 글을 심심풀이로 보시고 폐기하세요.
*필자의 조부께서는 본래 호가 의암(義菴)이셨다. 그런데 광복 이후 호 의암에서 의(義)자와 비슷한 글자인 화(華)자로 바꾸며 화암(華菴)이라 고쳐다. 그 연유는 익산 금마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긴 것 즉 화(華)의 땅으로 여긴 것, 또 화(華)자가 조상 대대 고향인 서울(양주, 한양)의 진산(鎭山) 북한산의 별명인 화산華山)의 화(華)자와 같은 글자인 것, 대대 고향 서울이 망국의 옛 수도가 되고 왜인들이 점령한 치욕의 땅이 되자 또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되어 찾아 온 익산의 진산(鎭山) 용화산(龍華山: 축약 명칭은 화산. 또 다른 이름 미륵산)의 화(華)자를 염두한 것, 안빈낙도하며 거주한 금마 연방죽 옆(연동蓮洞, 연꽃蓮華이 가득한 방죽)에 마련한 집에서 꽃(花. 花의 통자通字 화華)과 나무 그리고 돌(怪石)을 지극하게 사랑하는 것 등을 감안하며 호를 화암(華菴)으로 바꿨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 화암이란 호는 친족인 전 경기도관찰사 조중목(趙重穆; 1869-1955년, 충정공 忠正公 조병세趙秉世 사손祀孫, 1893년 문과급제) 공께서 금마 조부댁에서 머무를 때 지어 권면(勸勉)한 호이다. 광복이 되었으니 너무 충의(忠義) 의연(毅然)만을 고집하지 말고 평안 안락하게 살아가라며 지어준 호이다.
*조부의 18대조인 문강공(文剛公) 조말생(趙末生; 1370-1447년, 1401년 문과 장원급제, 병조판서 대제학 등 역임)의 호 화산(華山)은 고려시대부터 조상 대대로의 고향인 한양의 진산(鎭山) 북한산의 별명을 따른 것이다. 이 화산과 조부의 호 화암(華菴)의 화자는 같은 글자이다.
*조부의 집터는 울안 밭 포함 약 600여 평이며 큰 건물은 세 채가 있었다. 이 중 사랑채는 196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며<당시 숙부(24세) 숙모(진주소씨) 내외가 신방(新房)으로 사용하였는데 숙부는 매우 큰 화상을 입자 비관하며 연방죽에 투신 운명하였다.>, 이후 뒷편 돌담과 본채와 별채 그리고 집터(서쪽 돌담과 나머지 탱자나무울타리 포함)는 세 차례 도로 공사(1960년대, 1978년과 2024년)로 인하여 차례로 해체 축소되어 국도로 편입되었다. 사랑채에는 조중목 공이 대자大字로 써 준 화암이란 당호(堂號) 현판도 걸려있었다. 그 글씨 원본은 필자의 집에, 사랑채 주초돌들은 모처에 각각 전하고 있다. 본채는 1978년 헐려 금마 인근의 모 교회 부속건물로 옮겨 재건되었다. <2024년 1월 19일 등록/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연방죽골 건밭등에서 백제 저온 창고((석빙고와 유사한 시설) 발견 소식을 듣고>
핑계지만 필자는 전공 분야가 문양과 도상 연구이다. 아주 몽매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 문헌에는 천착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십일도회고시 안에 마한과 보덕국 국도 금마가 소개된 사실)을 알게 되어 늦었지만 다행이라 여기면서 급히 원문 사진을 소개하고자 한다.
익산 금마 일대에 전하는 저명한 백제 역사문화유산들은 201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익산 특히 익산 금마 일대는 백제 이전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사를 품은 도읍지였다. 이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이천여 년 동안 지명이 전혀 변동되지 않은 즉 지조가 있고 오랜 역사를 함께 자랑하는 금마라는 지명과 함께 당당하게 분명하게 전승되고 있었다. 이 중요한 사실이 이 책을 통하여도 조선시대 후기까지 깊이 널리 인식되고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바라건대 익산 금마 땅이 마한 국도 이후에 백제 무왕 때에 백제의 국도였고 통일신라 초에 고구려 유민들의 나라 보덕국의 국도였다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널리 자랑스럽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이 중요한 사실은 이십일도회고시 이전의 사서인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 응제시주 신증동국여지승람 금마지 등과 이후의 사서인 대동지지 동국여지비고 익산군지(1959년) 익산군지(1981년) 등에도 이미 잘 소개되어 있다.
*익산 금마 지역에서 역사 문헌과 전설에 나오는 대표적인 마한 왕성 터는 201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유적>(대한민국 사적 제408호(1998.09.11 지정)이다. 관련된 필자의 글 그리고 사진은 이 글 뒤에 실려 있다. 그 중에서 사진 다수는 2022년 5월 26일 작성, <익산 왕궁리 유적의 모질메 지명에 대하여>. 문헌 소개는 <2022년 5월 23일 익산의 지명(땅이름) 금마에 대하여> 등. 대표 문헌은 <『금마지』(영조 32, 1756년 편찬) 王宮坪: 군의 치소로부터 동남쪽 5리에 있다. 제석면 龍華山의 남쪽 기슭이 끝나는 곳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馬韓 때 朝宮이라고 한다. 옛 터와 성터가 宛然하다. 흙을 포개어 성채를 삼았으며 돌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밭을 갈 때 와당과 돌이 땅에 펼쳐져 있고 깊이 들어 가도 그대로 있다. 혹 돌출된 돌을 뚫어 일으키면 들어간 땅이 몇 척 가량이다. 방 1間은 돌 4조각으로 늘어놓는데 두 돌이 서로 교차하는 곳은 쪼으고 갈아 묶음으로 삼았다. 돌 아래는 연기에 그을린 것이 남아 있다. 간간이 옥과 노리개 동전 쇠못 같은 것들을 얻는다 한다. 이곳은 궁평으로부터 3리 떨어진 곳이다. >
*보덕국과 관련된 문헌도 위 역사 문헌에 간단하게 실려 있다. 관련 유적은 하나가 남아 있다. 즉 오랫동안 보덕성으로 불린 토성(일부 석성이며 발굴 조사로 백제 때 쌓은 성으로 밝혀진 바 있다. 사적 제 92호)이다. 이 성은 지금은 익산 토성 또는 오금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각지의 농악 중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강렬한 장단을 표현하는 금마 왕궁 춘포 지역의 농악이 고구려적인 성격, 특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익산의 토착 성씨 익산이씨의 시조는 고구려의 역사책 신집(新集)』5권를 편찬한 이문진(李文眞)이다. 이를 통하여 익산이씨가 고구려 유민들의 후예 즉 고구려와 보덕국의 백성 후손임을 알 수 있다. 태학박사(太學博士)인 이문진은 고구려 영양왕 11(600)년 왕명을 받들어 역사서『신집』5권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그 이전의 역사책『유기(留記)』100권을 간추려서 정리한 것이다. 현재 모두 전하지 않는다.
*이 글과 관련된 필자의 원고 목록은 아래와 같다(마한 유민에 모두 소개됨). 전북 익산 연구 목록(마한 유민의 원고 목록, 2023년 2월 5일). 특히 2022년 5월 23일 발표, 익산의 지명(땅이름) 금마에 대하여
*아래는 이 글과도 관련된 필자가 지은 시이다.
<금마의 산천 역사 모시는 인걸들에게 드림>
금마는 이천년전 첫 이름 금마라네
지금껏 그 이름을 부르고 아끼나니
이같이 지조지키는 고을 어디 있더냐
기준왕 남천하여 금마를 도읍하며
마한을 세우시고 기준성 쌓으셨네
대대로 익산의 역사 첫머리에 전하네
백제의 무왕님은 금마의 연방죽골
태묻고 살으시다 나랏님 되시었지
왕궁터 미륵사터와 쌍릉 함께 남기셨네
고구려 유민들은 고안승 왕을 세워
나라를 찾으려다 신라에 속았구나
금마로 유인당하여 보덕국도 뺐겼네
하느님 선물이라 나라의 으뜸 곡창
근면과 정성이면 대대로 풍족하리
금마의 이름지키며 신선마냥 살자스라
2024년 1월 20일
2015년 7월 4일 음력 5월 19일
오늘 "독일 본(Bonn) 국제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6.28~7.8)에서 현지시각 7. 4(토) 12시에 (한국시간 오후 7시) 세계문화유산에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등재되었다. 백제역사유적 가운데 공주, 부여, 익산이 당당하게 포함된 것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8개소다. (익산)미륵사지, 왕궁리유적/2개소, (공주)공산성, 송산리고분군/2개소, (부여)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나성/4개소다.
내가 마한 유민이므로 마한의 후예로서 자긍심이 새로워 진다.
마한과 백제는 한 몸이지 않은가---- 마한 유민인 내 생일에 일어난 환희의 극치다.
2026년 5월 26일
나의 블로그 <마한 유민>을 만든 목적을 아래와 같이 적었다.
마한은 고조선과 함께 우리 겨레 역사 서막을 연 나라였지요. 언제 멸망 흡수당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삼국사기에는 기원후 9년(이로 보면 대략 1세기 경)으로 나옵니다. 익산시 금마면 일대는 마한의 중심지였고 자연스럽게 관련 전설이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 제가 태어난 엽동 마을에도 마한 전설이 서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블로그(2011년 12월 31일 개시) 별명을 마한 유민으로 정하였습니다. 고향 일대의 산천과 역사를 사랑하고 특히 모진 환경 역경 속에서 살아남은 백성을 위하여 그 백성의 편에서 제 나름의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연구의 대부분을 여기에 공개하였습니다. 2026년 5월 26일
이를 줄여서
마한은 고조선과 함께 우리 겨레 역사 서막을 연 나라였지요. 언제 멸망 흡수당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삼국사기에는 기원후 9년으로 나옵니다 익산 금마 지역은 마한의 제일 중심지였고 관련 전설이나 유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가 태어난 엽동 마을에도 마한 전설이 서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블로그(2011년 12월 31일 개시) 별명을 마한 유민으로 정하였습니다. 고향 일대의 산천과 역사를 사랑하며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오금산에도성이 그림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보덕성(報德城) 즉 보덕국(報德國)의 성(城)이 아닌 서여왕도薯與王都가 표기되어 있다. 이는 명백한 오기(誤記)이다. 서여왕도란 서여의 왕도가 있던 성이란 뜻이 된다. 이 표기에서 서여는 서동薯童의 오기誤記이다. 익산의 역사 문헌에서 서동薯童을 백제의 武王이 아닌 마한馬韓의 무강왕武康王으로 기록한 경우가 많은 데 이를 반영한 것이다. 익산의 역사 문헌에서 마한과 백제는 혼칭混稱된 경우가 많다. 보덕성이 자리한 오금산에 서동이 탄생하고 서동의 여러 전설(서동이 자라고 금을 캤으며 어머니를 위하여 지었다는 오금사五金寺가 자리하였다는 등의 전설)이 있었기에 이를 바탕으로 보덕국 왕도가 아닌 마한 무강왕의 왕도로 표기한 것이다.

익산군 지도
고종 9(1872)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미륵산에 기준성이 그림과 함께 표기되어 있다. 이 성은 역사 문헌에서 마한을 세운 기준의 성(城)으로 나온다.
이 지도에는 오금산과 보덕산이 그림으로 표기되어 있다. 보덕산(보덕국의 성)에는 성(城)도 그림으로 표기되어 있다. 익산의 역사 문헌에는 이 성을 보덕성(報德城)으로 많이 표기되어 있다.





전북 익산 연구 목록(마한 유민의 원고 목록,
| 발표 시기 | 내용 | 비고 |
| 1990년 8월 31일 |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석사) 학위 종별 문학석사 학위등록번호 89(석)13762 학위논문 제목:「百濟佛像光背에 關한 硏究」 평점 3.75/ 4.0 96.88/ 100 |
1990년 석사학위논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불상 광배는 부처의 氣 표현이며 그를 연꽃 모양으로 나타낸 것이다. 광배 내부 문양들은 기 표현으로서 상호 同格, 交互, 호환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 해석은 1993년 12월 12일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
| 1991년 2월 1일 |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입사(학예연구사) | 국립중앙박물관 |
| 1992년 6월 | 「익산益山 연동리蓮洞里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광배光背의 도상 연구圖像硏究」, 미술자료 제 49호 <익산 연동리(蓮洞里) 석조여래좌상 광배 도상 연구의 수정과 보완」,『馬韓 遺民』(2020.4.22.).> <광배의 ‘화염문火焰文’ 이란 용어의 잘못됨을 지적하는 연구-광배의 화염문은 나선형(螺旋形) 태양문에서 유래한 나선형 연화문이다-」/ 백제금동대향로의 화연문이란 명칭도 잘못됨을 시정하기 위하여 작성하였다.>『馬韓 遺民』(2020년 5월 12일> |
국립중앙박물관 |
| 2006년 6월 1일 | 「논산 황화정皇華亭 터를 오고 가며」, 박물관신문 *<2018년 12월 14일 (속續) 논산 황화정(皇華亭) 터를 오고 가며> |
국립중앙박물관 |
| 2009년 2월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발견 사리장엄구에 대한 연구」, 百濟硏究 49輯/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발견 사리기 중 내함은 백제 멸망 이후 300여 년 지난 후백제 때 백제의 전통을 계승하여 만든 도상(형태와 문양)이다. 백제금동대향로와도 기본적으로 같은 도상이다. <마한 유민 박사학위논문(2016년 8월 26일)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 연구>에 실린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기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기 등/2016년 8월 26일/2022년 12월 19일 등록>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 2009년 3월 22일(일) | 미디어 다음에 <익산 왕궁리탑 주인은 후백제 아닌 백제’에> 마한 유민의 학설 소개.(기자 노형석) | 미디어 다음 |
| 2009년 3월 23일(월) | 3월 22일 미디어 다음에 그대로 실린 기사, 즉 한겨레신문 17면에 제목 ‘익산 왕궁리탑 주인은 후백제 아닌 백제’에 마한 유민의 학설 소개.(기자 노형석) |
한겨레신문 |
| 2011년 8월 26일- 2012년 8월 15일 |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 학예연구관 | 국립전주박물관 |
| 2012년 7월 12일(수) | 큐레이터와의 대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발견 사리장엄구에 관하여 | 국립전주박물관 |
| 2012년 7월 12일(수) | 자원봉사자 교육: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발견 사리장엄구에 관하여 | 국립전주박물관 |
| 2012년 8월 16일(목) |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아시아부 근무 | 국립중앙박물관 |
| 2012년 12월 10일 | 진충귀 조선개국원종공신녹권 원문 및 해석(2012년 12월 10일 이전 작성, 2019년 9월 3일 보완) <진충귀(陳忠貴)의 조선개국원종공신녹권과 왕지(王旨)를 기증한 삼척진씨 대종손 고(故) 진덕용(陳悳鏞)씨와 나눈 여러 사화(史話)>(2019년 8월 30일) <진충귀 조선개국원종공신녹권 원문 및 해석(2012년 12월 10일 이전 작성, 2019년 9월 3일 보완)>(2019년 9월 3일) <율정(栗亭) 진의귀(陳義貴)님을 만난 역사의 길>(2019년 9월 4일)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익산 양촌대(陽村臺)와 양촌권근선생유허비(陽村權近先生遺墟碑) 그리고 진의귀(陳義貴)>(2023년 1월 27일)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16년 10월 6일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거북(거북이) 바위(원고) | |
| 2018년 11월 14일 | 조선시대 익산군 관아 정문正門의 돌기둥(익산 금마초등학교 안으로 이전되어 있음) | 마한 유민 블로그 |
| 2018년 11월 16일 | 조선시대 익산군 익산 객사의 현액(현판) 이름은 마한관(馬韓館)이다 <조선시대 익산군 객사 이름에 대하여 -마한관 보다는 금마관이라는 주장->(2021년 2월 16일> |
마한 유민 블로그 |
| 2018년 12월 12일 | 익산 용화산(龍華山) 남쪽 황각동(黃閣洞) 마을 유상곡수(流觴曲水) 유적과 바위에 새긴 글씨<각자刻字> | 마한 유민 블로그 |
| 2018년 12월 14일 | (속續) 논산 황화정(皇華亭) 터를 오고 가며 | 마한 유민 블로그 |
| 2019년 8월 30일 | 진충귀(陳忠貴)의 조선개국원종공신녹권과 왕지(王旨)를 기증한 삼척진씨 대종손 고(故) 진덕용(陳悳鏞)씨와 나눈 여러 사화(史話) | 발표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표준관리시스템;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자료관리시스템; 마한 유민 |
| 2019년 9월 3일 | 진충귀 조선개국원종공신녹권 원문 및 해석(2012년 12월 10일 이전 작성, 2019년 9월 3일 보완)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19년 9월 4일 | 율정(栗亭) 진의귀(陳義貴)님을 만난 역사의 길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익산 양촌대(陽村臺)와 양촌권근선생유허비(陽村權近先生遺墟碑) 그리고 진의귀(陳義貴)>(2023년 1월 27일)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0년 4월 22일 | 익산 연동리(蓮洞里) 석조여래좌상 광배 도상 연구의 수정과 보완」,『馬韓 遺民』(2020.4.22.).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0년 5월 12일 | 광배의 ‘화염문火焰文’ 이란 용어의 잘못됨을 지적하는 연구-광배의 화염문은 나선형(螺旋形) 태양문에서 유래한 나선형 연화문이다-」/ 백제금동대향로의 화연문이란 명칭도 잘못됨을 시정하기 위하여 작성하였다. |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 관리시스템: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자료관리시스템; 마한 유민 |
| 2021년 2월 16일 | 조선시대 익산군 객사 이름에 대하여 -마한관 보다는 금마관이라는 주장-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1년 3월 6일 | 조선시대 익산군의 흑석부곡黑石部曲 흑석원黑石院 흑석제黑石堤에 대하여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1년 6월 28일 | 2021년 신축년 양력 6월 28일 음력 5월 19일 환갑이 된 해의 생일날에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1년 7월 12일 | 화강華岡 이영우李英雨 님이 그린 군어도(群魚圖) 어해도(魚蟹圖) 병풍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1년 10월 5일 | 2004년 5월 22일 전주시 삼천동 안산(案山.雁山)에 세운 楊州趙氏世阡碑 등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2년 5월 23일 | 익산의 지명(땅이름) 금마에 대하여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2년 5월 26일 | 익산 왕궁리 유적의 모질메 지명에 대하여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2년 6월 22일 | 전북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392번지의 탁영선생濯纓先生 거문고 ‘탁영금濯纓琴’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2년 7월 12일/ 2023년 1월 8일 수정 등록 |
마한 유민 블로그를 티스토리 블로그로 전환하는 첫 글 및 사진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2년 12월 19일 | 마한 유민 박사학위논문(2016년 8월 26일)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 연구>에 실린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기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기 등/2016년 8월 26일/2022년 12월 19일 등록 | 마한 유민 |
| 2023년 1월 25일 | 익산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난 항일 독립 애국지사 임규(林圭) 선생 묘소 등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3년 1월 27일 |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익산 양촌대(陽村臺)와 양촌권근선생유허비(陽村權近先生遺墟碑) 그리고 진의귀(陳義貴)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3년 2월 4일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연구 목록(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기 연구 목록)(마한 유민 작성 원고 목록) | 서울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마한 유민 |
| 2024년 1월 19일 |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연방죽골 건밭등에서 백제 저온 창고((석빙고와 유사한 시설)발견 소식을 듣고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4년 6월 13일 | 익산 금마金馬 오금산五金山 발견 금동여래좌상의 광배에 대하여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4년 6월 17일 | 익산 금마면 동고도리의 오랜 샘물 ‘한샴(寒泉)’을 위하여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4년 8월 9일 | 익산 금마金馬 오금산五金山 발견 금동여래좌상의 광배 연구 | 발표 장소: 동원 포럼 하계 미니 포럼 |
| 2025년 5월 18일 | 익산 금마 남산 서낭당 고개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5년 6월 2일 | 「익산 금마 오금산 발견 금동여래좌상 광배의 연구」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
| 2026년 4월 24일 |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안 ‘마한馬韓의 서울 익산 금마金馬’> | 발표 장소: 마한 유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