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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산을 표현한 19세기 조선시대 청화백자(2018년 6월 14일 작성)

조원교 2026. 5. 5. 12:22

이 글은 마한 유민에도 소개된 아래 필자 논문과 관련이 됩니다.

조원교, 조선시대 도자기 그림에 대한 新解釋 -海中神山三神山 그림-, 󰡔文化藝術硏究󰡕, 第 十二輯(2018 12 30일)

 

 

 

삼신산을 표현한 19세기 조선시대 청화백자(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원고)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관 조원교(趙源喬)

 

신산은 신령스러운 산,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 기이한 산, 전설 속의 산이다. 이 신산은 인류 보편적인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동북아시아의 신산은 대체로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용이나 봉황 등 상서로운 동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며 바로 별천지, 낙원, 이상세계로 여긴 곳이다. 비록 상상의 모습, 세계이지만 이를 동경하고 찾으려던 노력을 경주하였고 문학, 조각(금속공예, 도자기 등), 그림, 정원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 신산은 바다 가운데 섬에도 있다 하였는데 이른바 해중신산, 해중선산이다. 먼 바다 미지의 영역에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해중신산은 결코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이 때문에서인지 요행 그곳에 다가가더라도 풍랑이 크게 일어 배가 뒤집혀지기 일쑤였다는 전설도 첨가하였다. 해중신산을 포함한 신산을 첨예하게 표현한 것은 바로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장소임을 보여 준 것이다.

필자는 1994년부터 우리나라 대표적인 해중신산 도상인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 부여 외리 출토 백제 문양전,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 등을 연구하였다.  1) 이 연구 때 이들을 형성한 문양, 조형 세계는 이미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부터 내려온 것, 원 중국 지역(현재 섬서성 하남성 지역) 것 보다 다채롭고 생생하며 체계적인 점,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역사문화유산에 승계되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1)필자는 해중신산을 포함한 신산 표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조원교, 海中神山에 관한 文獻圖像 硏究,』 『美術資料63(1999.11); 百濟金銅大香爐에 관한 硏究,美術資料65(2000.12); 扶餘 外里 출토 백제 文樣塼 연구,美術資料74(2006. 6); 百濟 武寧王陵 出土 銀製托盞에 대한 硏究,- 笑軒 鄭良謨先生 八旬記念論叢- 東垣學術論文集14(國立中央博物館韓國考古美術硏究所, 2013.5); 韓國古代 神山世界圖像 硏究() -三國時代까지, 氣 表現 中心으로-,韓國思想文化78(韓國思想文化學會, 2015.6); 한국의 고대 神山 世界도상 연구() -三國時代까지, 氣 表現 中心으로-,韓國思想文化79(2015.9); 扶餘 陵山里 出土 百濟金銅大香爐 硏究(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해중신산 표현은 향로(향꽂이 포함), 촛대, 문방구(연적, 수반, 필가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도자기로 만든 해중신산은 크게 세 가지인데 그림으로만 표현한 경우, 산 모양으로 만든 경우, 산 모양에 주변까지 표현한 경우이다. 물론 이 모두의 표면에는 해중신산에 있다 여긴 산을 비롯한 물상을 표현하였다. 특히 바다는 , 물결 물고기로 표현하였다.

여기에 소개하는 (1)(3)은 위 세 형식 중 두 번째에 속한다. 즉 오로지 그림으로만 해중신산을 표현한 경우이다. 아주 명확하게는 해중신산의 일부만 표현한 것이다.

(도1)청화백자 접시 조선, 19세기, 15.2×14.8×2.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수정 131) (도2)청화백자 접시 조선, 19세기, 15.7×15.7×2.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관 10651) (도3)청화백자 접시 조선, 19세기, 15.2×14.8×3.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수정 130), 국립중앙박물관, 『水晶先生蒐集文化財』, 1988년, p.1

 

이 도자기 3점과의 만남은 지난 201611월 개최한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전시실에서였다. 필자는 이 만남부터 전개된 도상 해석 과정을 전달하며 희열을 교감하고자 한다.

먼저 전시장에서 응시한 것은 이 3점에 공통으로 표현된 막대기들과 그들에 부착되어 있는 나무이다. 이들은 부여 외리 출토 백제 문양전(4)(도5)(도6)의 하단 좌우의 바위 특히 (도4)의 하단 좌우에 표현한 첨예한 바위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즉 막대기는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라 해중신산 특히 삼신산 가운데 한 산인 섬 일부 모습이고 특히 첨예한 바위 표현이고 나무들은 바위를 비롯한 섬에서 자라는 나무임을 바로 알아 본 것이다. 이 바위와 나무는 별천지, 이상세계, 신선세계의 한 모습, 특히 해중신산의 일부이다. 이 내용을 전시 기간 동안 몇 동료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너무 뜻밖의 해석이라 여겼는지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 명백한 확신을 길이 전달하고자 국립중앙박물관 표준유물관리시스템에 등재하기로 결심하였다.

 

(도4)1937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서 발견된 백제 산수문전 백제, 600년경, 가로 세로 29cm 내외, 두께 4.3cm 내외 ,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도5)1937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서 발견된 백제 산수문전 백제, 600년경, 가로 세로 29cm 내외, 두께 4.3cm 내외 ,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도6)

 

(도7)청화백자 접시 조선, 19세기, 15.4×1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유물번호 수정 129) 국립중앙박물관,『水晶先生蒐集文化財』(1988.12) , p.207

 

 

 

(도7)의 칼라 사진

 

 

이에 우선 작업인 이 도자기들의 정보(사진과 제원 등)을 알아보고자 201861일 수정 박병래의 기증품 소개한 책水晶先生蒐集文化財83면을  3) 펼친 순간 필자의 시선은 그 왼쪽 면인 82면의 도자기(7)에 한동안 머물렀다. 벅찬 감격을 억누를 수 없었다. (7)은 전시장에서 홀로 체험한 확신을 모두에게도 전달할 수 있을 정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3) 도자기의 그림은 해중신산의 일부분이고 (7) 도자기의 그림은 (1)-(3) 도자기 그림의 상세한 모습, 확대된 공간 모습이다.

(도7) 도자기 그림이 해중신산을 표현하였다라는 필자 주장의 증거는 전체적인 모습에서 또 배치된 물상으로도 충분하게 입증되는데 대체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

맨 아래 가운데에 세 개의 반구형 물체는 십장생 문양으로도 표현하던 물결(, 수파, 파도) 표현이다. 이 물결 표현과 배치 장소는 해중신산을 표현한 부여 외리 출토 문양전(소위 산수문전 산경문전)(1937년 발견)산수문전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이 그림의 물결은 조선시대작인 일월오봉도나 도자기에서도 볼 수 있는 당시 유행하던 모습이다.  4)

이 도자기의 물결은 해중신산이란 상서로운 곳에 있음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대개 위로 솟구치는 기(서기)도 함께 나타냈다. 이 그림에서는 이 기(서기)7개 표현하였다. 7이란 숫자도 길수임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 물결 좌우에 있는 막대들은 섬의 가장자리 바위 표현이다. 섬의 가장 자리는 해중신산에서도 배를 댈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쉽게 정박할 수 없는 곳으로 나타내려고 이처럼 첨예한 바위 절벽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도자기의 첨예한 바위 표현은 역시 해중신산을 표현한 백제 산수문전(4), 2) 백제금동대향로(도8) 것과 흡사하다. 5)

 

2)부여 외리 출토 산수문전은 (4)(도5)(도6) 8종이다. 8종 가운데 바위는 3 (도4)(도5)(도6) 에 표현되어 있다. 관련 필자의 연구논문은 앞서 소개한 조원교, 扶餘 外里 출토 백제 文樣塼 연구이다.

3)국립중앙박물관,水晶先生蒐集文化財(1988.12);

4)이 물결()은 십장생도 등에서 보듯 길상 문양으로도 나온다. 십장생은 장수하는 존재이며 대개 해, , , 구름, , 소나무, , 사슴, 거북, 불로초를 포함하는 총칭이다. 그러나 실제 십장생을 표현할 때에는 고정적이지 않다. 몇 종류가 제외되거나 혹은 다른 것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다.

5)백제금동대향로 바위는 총 17군데에 표현되어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경우 뚜껑의 맨 아래쪽 부위 즉 바닷가(물가) 부위는 가장 경사가 급한 곳이다. 이곳은 바위 등으로 이루어진 급격한 절벽 부위이다. 실제 낚시하는 신선이 앉은 곳과 긴 부리가 있는 새 옆에는 바위도 있는데 그 모습은 (1)-(4)의 경우 처럼 직립한 막대 모양이다.

 

(도8)백제금동대향로 백제, 7세기, 높이 62.5cm,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유물번호 부여 5333)
(도8-1)바위 등

 

 

바위를 포함한 돌은 영구불변, 우직함이란 속성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십장생 등 길상 문양으로 채택하였다. 나아가 순수, 장수를 기원하는데 비유되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이 도자기 그림의 바위는 해중신산이란 길상, 불로장생, 신선세계으로 이해되고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도7) 도자기의 기둥 그림 안에는 덩굴연화문 (*종래 흔히 사용한 당초문은 잘못된 용어)이 묘사되지 않은 반면 세 도자기(1)(3)의 바위 그림 안쪽 마다에는 덩굴연화문이 있다. (도7)에도 표현되어야 하지만 여러 물상을 나타낸 관계로 아니면 너무 상세한 부분이라 여겨서인지 바위 안에 덩굴연화문이 없다.

덩굴연화문은 단순하게 공간을 충전하기 위하여 장식하는 측면보다도 상서로운 기(기운) 그 자체 또는 그 움직임, 전달, 영역을 표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6)  세 도자기 바위 안 덩굴연화문은 후자에 속한다. 특히 같은 해중신산인 백제 문양전이나 백제금동대향로에 있는 덩굴연화문 즉 해중신산에 표현하던 당초문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도6)의 그림 파도와 왼쪽 절벽 곁에는 배가 있다. 배에 중앙에 돌출된 네모진 부위는 닻과 선실이다. 선실은 항해 과정에서 숙식과 휴식을 취한 공간이다. 승선한 2명은 멀고 험한 항해 끝에 신선세계에 거의 도달하였거나 이미 도착한 분들이다. 신선세계에 들어갈 경우 동경하던 불로장수하는 신선이다. 이 두 인물이 목적하여 찾아간 이 해중신산은 그림의 핵심 장소이다. 따라서 가장 크게 나타냈다. 이 산은 여러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만약 이 산 모습만을 독립 조형(造形)하면 (8)과도 같은 모습이다.

 

6)이러한 문양 표현 목적에 대하여는 필자 원고 蓮華化生登場하는 裝飾文樣 考察, 美術資料56(1995.12); 動物의 입에서 비롯되는 化生 圖像 考察, 美術資料58(1997.6); 蓮華化生山 圖像과 그 交互에 관한 硏究, 美術資料60(1998.11)를 들 수 있다.

 

이외 (도7)에 표현된 해중신산에서 구성원이자 존재하고 살아가는 존재, 물상으로는 길짐승으로 배치된 사슴 두마리, 날짐승으로 배치된 새 두마리, 소나무로 추정되는 나무 두 그루, 불로초 한 포기, 갈매기로 추정된 새 네 마리이다.

나무는 앞 3개의 접시에서 볼 수 있듯 모두 바위에서 자라고 있다. 거친 환경, 역경을 거치며 자라더라도 장수한 나무들이다. 모두 소나무처럼 보이는데 특히 오른쪽 나무는 그 전체적 모습이 고구려 무덤 벽화나 백제금동대향로에 있는 나무와 닮아 있다. 과연 소나무라면 예로부터 높은 품격과 절조,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이므로 채택한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 신선세계나 장수 축원 그림에 송죽매에서 보듯 가장 흔하게 표현되었던 분위기와 관련된다.

불로초는 예로부터 상상 속에 존재하는 불로장생하는 효험을 지닌 영약으로 여겼다. 이 그림에서처럼 그 모습은 대체로 난초 잎처럼 보이는 줄기 중간에 영지버섯이 맺혀 있는 모양이다. 이 그림에 몇 가지 물상 중에 이처럼 불로초를 포함시킨 것도 이 해중신산이 신선세계나 불로장생 세계임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이 불로초는 이 그림에 함께 표현한 사슴의 먹이로도 배치한 것이다.

태양은 만물을 화육시키는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 위상은 늘 높게 평가, 칭송하며 길상, 신앙의 대상으로도 전개되었다. 태양을 십장생 가운데 하나로 채택한 것, 이 도자기 그림에서 태양을 맨 위에 배치한 것도 그 높은 위상, 역할을 반영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태양은 백제금동대향로의 정상에 있는 태양의 새 봉황과도 비교된다. 즉 가장 높은 곳에 배치하여 양을 대표하는 존재, 해중신산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지닌 존재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의 태양은 두 동심원과 여러 방향 발산하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을 동심원으로 표현하는 전통은 무산 지초리 암각화나 청동기 시대 청동 거울 등에서 보듯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있었다. 7)

이 도자기 그림 동심원 즉 태양의 외곽에는 여러 방향으로 발사하는 6개가 물체가 있다. 이 물체는 짧은 당초문, 파상문과도 외관이 비슷하다. 이 물체는 이 그림의 태양을 위쪽 까지 모두 나타냈다면 아마 9개였을 것이다. 이 물체는 가운데를 동심원으로 표현한 태양의 빛이 발산하는 모습, 태양이 지닌 기 표현이다. 그런데 이 모습이자 물체는 연화문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비슷한 모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연화문으로 많이 표현되었으며 특히 같은 지역 관요에서 같은 무렵 생산한 도자기의 연화문(9) 등에도 있다. 8)

 

7)동심원은 역시 오래 전부터 태양 이외에도 하늘, 조물주, 신 등을 상징하거나 대신하는 연꽃의 한 모습으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동심원은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여러 의미와 상징을 담은 경우가 많다.

8)부여 능산리 소위 동하총의 현실 서벽에 있는 백호도에 있는 원문이 이 청화백자 그림(4)의 태양문과 흡사하다. 약간 돌기가 나왔으나 이 돌기가 장차 더 자라면 청화백자(9)의 것과 닮아 질 수 있다. 모사 사진은 백제문화개발연구원 발행, 백제조각.공예도록, 1992, 319면 도 395-2이다. 모사도는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도9)청화백자 합 조선, 1857년경, 고 15, 구경 2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새천년 새유물』, 2000년, 도 98, 뚜껑 맨 위는 가장 일반적인 연화문이 있다
(도9)백자청화 연화문 접시, 고 3.1, 중앙일보사, 수정박병래소장 이조도자기도록, 1974년, 219면

 

새 두 마리는 날짐승의 대표격이다. 흔히 신선세계의 짐승으로 묘사되는 珍禽(진기한 날짐승)奇獸(기이한 길짐슴)(기타 仙禽神獸 珍禽異獸 仙禽奇獸)에서 날짐승이다. 그런데 이 날짐승은 암수 한 쌍임이 분명하다. 이는 그 모습이 다른 점. 태양의 좌우에 각각 한 마리만 대칭으로 배치된 점, 날개를 달리 표현한 것 특히 아래 대비되어 배치한 길짐승인 두 마리 사슴이 분명 암수 한쌍인 점에서이다. 날개가 좀 더 화사한 왼쪽이 수컷임이 분명하다.

이 두 마리 새 이름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동작이나 시선이 태양을 향한 점으로 볼 때 동북아시아에서 태양과 관련지어 많이 소개하던 상상의 새인 봉황 또는 삼족오라고 본다. 그런데 조선시대 일반적인 봉황과는 모습이 너무 차이가 나는 관계로 삼족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 삼족오로 추정되는 새 두 마리는 아마도 왼쪽 벼랑 위에 소나무로 추정되는 나무 위에 둥지를 틀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그곳이 더 잎사귀가 무성하기 때문이고 또 삼족오라는 새가 벼랑 바위에 산다는 전설 때문이다.

이 두 마리 증 오른쪽 새의 뒤쪽 위로 네 개의 점 표현이 있다. 이 점들은 새 두 쌍이이다. 이는 같은 해중신산을 그림으로 표현한 같은 지역 관요에서 같은 무렵에 생산한 청화백자 그림으로 알 수 있다.

이 그림 중앙 해중신산의 아래 쪽에는 두 마리 사슴이 있다. 이들은 신산의 珍禽(진기한 날짐승)奇獸(기이한 길짐슴)(기타 仙禽神獸 珍禽異獸 仙禽奇獸)에서 길짐승의 대표격로서 배치한 것이다. 이 두 사슴은 분명 외관으로 보듯 뿔이 난 것이 숫사슴이고 그 오른쪽이 암사슴이다. 숫사슴은 먼데 있는 불로초를 향하고 있다 여긴다. 반면 암사슴의 시선은 멋진 숫사슴을 향하고 있다. 금슬이 좋고 근심걱정 없는 상태(신선세계) 등을 암시하는 듯하다.

사슴이 신선세계, 불로장생의 세계, 해중신산 등 신산에 등장된 것은 이미 우리나라 강역에서도 2천여 년전부터 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면 전 평양 출토 동통,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 등이며 가깝게는 조선시대 십장생도를 들 수 있다.

이상에서 소개한 네 도자기 그림은 같은 시기에 같은 분원에서 만든 아래 몇 도자기 그림의 해석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물론 아래 도자기 표현들은 앞서 소개한 (1)-(도3)(도7)에 있는 해중신산의 해석에도 보완 역할을 한다.

(10) 그림은 이 두 신선이 해중신산을 향하여 갈 배를 부르는 장면이다. (4)의 그림처럼 멀리 해중신산의 가장 중앙에 태양이 있다.

(도10)청화백자 연적 조선, 19세기, 고 6.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수정 240), 국립중앙박물관,『수정선생수집문화재』, 도 26

 

 

 

 

(도11)청화백자 접시 조선 19세기, 고 4.0, 구경 16.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수정 178), 국립중앙박물관, 『수정선생수집문화재』, 도 138

 

 

 

(11) 그림은 해중신산에서도 바닷 속을 위주로 그렸다. 갈매기로 보이는 새가 4마리와, 해중신산의 맨 위 중앙의 태양은 (4)와 같은 해중신산이란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다.

 

(도12)청화백자 접시 고 3.9, 지름 17.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수정 192), 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1996년, p.289

 

 

(12)은 해중신산과 해중신산을 포함한 물상을 나타냈는데 특히 물상 중심이다. 물상은 산, 사슴, 사슴의 먹이인 불로초, 바위(왼쪽 율동적으로 그린 바위), 소나무인데 (도7)과 일치한다. 소나무는 매우 사실적이므로 (1)(3)(7)의 나무 이름 규명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물상 가운데 가장 큰 사슴은 무릎을 꿇고 먹이인 불로초를 응시하고 있다. 이 그림으로 인하여 사슴의 먹이가 불로초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상으로 소개한 해중신산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대체로 세 개의 산(신산, 선산)이라 하였고 또는 다섯 개의 산(신산, 선산)이라 하였다. 이를 한데 부를 때 삼신산, 오신산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삼신산이 압도적으로 많이 불린 명칭이다. 이 삼신산의 구체적인 이름은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며 이 가운데도 봉래산이 가장 많이 불린 명칭이다.

이 삼신산 즉 세 신산은 반드시 세 산을 함께 표현하지 않았다. 한 공간에 모두 표현하면 번거로움이나 공간 제약이 따르므로 한 산을 나타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경우도 삼신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본다. 9)

이 삼신산은 연꽃 모양으로 표현하거나 연꽃 1-3 송이와 함께 나타낸 경우가 있다. 9 ) 이는 신산을 포함한 본래 산봉우리의 대부분 모습이 연꽃과 닮은 것으로 본 데서 왔다. 그리고 삼신산이 연꽃 모양이라 여긴 데서 왔다. 10)

9)산을 연꽃 모양으로 표현한 것은 이 세상을 나무(꽃나무 포함)와도 같은 모습으로 본 사상, 고대로부터 내려온 우주수(宇宙樹) 사상과도 관련된다.

10)연꽃이 산을 화생하는 도상으로 까지 전개되었다. 이에 대하여는 조용중(조원교), 蓮華化生山 圖像과 그 交互에 관한 硏究,美術資料60(1998.11).

 

 

앞서 소개한 도자기 그림 역시 해중신산 가운데 삼신산을 표현한 것이다. 이 표현은 삼신산과 물상을 8종이 벽돌로 나열하여 나타낸 부여 외리 출토 백제 문양전과 백제금동대향로(삼신산 가운데 한 섬 만을 연꽃 모양으로 만들고 그 표면에 산을 포함한 여러 물상을 상세하게 나타낸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보듯 이미 오래전 우리 겨레의 역사문화유산으로 정착되어 있었다.

아래 몇 예를 통하여 해중신산 가운데 삼신산 표현이 널리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삼신산과 연꽃이 매우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도 알 수 있다. 물론 이 연꽃은 백제금동대향로의 연꽃 모양처럼 불교와는 관련이 없는 연꽃이다.

 

 

(도13)청화백자 접시 조선, 19세기, 고 3.3, 구경 17.7, 서울 이종복 소장, 웅진출판주식회사,『국보』8 백자. 분청사기, 1992년, 도 49
(도14)청화백자 접시 조선, 19세기, 고 4.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수정 179), 중앙일보사,『水晶朴秉來所藏 李朝陶磁器圖錄』, 1974년, p.206
(도15)고구려 기와 평양 토성리 출토, 井內古文化硏究室 井內功,『朝鮮瓦塼圖譜』2, 1976년, 도 151
(도16)고구려 벽화 무용총『中國出土壁畫全集』8 遼寧 吉林 黑龍江, 2012년, 북경 과학출판사 발행, 도119

(13) 그림은 산, 가장 높은 곳의 태양, 두 마리 사슴, 네 마리 기러기로 보이는 새를 통하여 (도7)과 같은 장소인 해중신산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산이 셋으로 구성되어 있어 (도7)을 포함하여 모두 삼신산과 그 곳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물상들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삼신산은 왼쪽으로 상호 연결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삼신산이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는 고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14)의 그림은 맨 위의 태양과 그 아래에 새 3마리, 삼산, 세송이 연꽃, 물결이 있어 해중신산 가운데 삼신산임을 알 수 있다. 세송이 연꽃은 신산을 연꽃 모양으로 여긴 것을 반영한 것이다. 그 뒤 삼산은 바로 앞 세송이 연꽃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 세송이 연꽃 모습은 고구려 기와나 벽화의 것과 매우 닮아 있다.

(17)의 그림은 (14)와 전체적으로 같은 배치를 하였다. 다만 삼산 모습이 약간 다르고 새는 마릿수만 축소된 차이만 있다.

(18)의 그림 역시 태양, 삼산, , 물결에서 보듯 같은 삼신산이다. 파도의 모습과 파도의 기 처리가 (4)의 것과 닮아 있다. 약동(躍動)하는 잉어는 역경을 거쳐 삼신산에 도달한 환희를 상징한다고 본다.

 

(도17)청화백자 호 조선, 19세기, 고 24.0, 중앙일보사,『수정박병래소장 이조도자기도록』, p.121

 

 

(도18)청화백자 접시 조선, 19세기, 고 4.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화출판공사,『李朝陶磁』, 1973년, 도 108

 

 

(도19)백자청화 화병 조선, 19세기, 고 20.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수정 126), 국립중앙박물관,『수정선생수집문화재』, 도 268

 

 

 

 

(도19)의 그림 역시 실재하는 곳이 아니라 상상 속의 장소, 불로장생의 신선이 살아가는 삼신산 가운데 한 산의 모습이라고 본다.

이상 몇 조선시대 후기 도자기 그림에서 신선세계, 신선사상을 담은 해중신산, 삼신산 표현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전체 내용이나 세부 표현이 삼국시대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이로 보아서 우리 고유의 표현, 사상을 계승한 것, 오랜 역사 속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체계적으로 계승, 유행한 역사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고려시대 조선시대 도자기 연구에서 이 해석이 보다 확산되어야 함을 매우 강조하고 싶다.